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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15년차 과장의 하루카테고리 없음 2019. 12. 10. 16:48
아침 5시30분.
오늘도 짜증섞인 알람소리로 공돌이의 하루는 시작된다.
하지만 여유롭게 누워있을 시간은 없다.
알람이 조금이라도 늦게 꺼지면 옆에 누워있던 트롤이 깨어난다.
''애들 다깨잖아. 정신좀차려. 못일어날꺼면 @%*/!~:,@; 빼애액''
트롤이 무서운것 보다, 트롤의 짜증에 아침부터 구박받을 토끼들이 불쌍해
허공답보로 식탁위의 알람을끈다.
대충 물이나 얼굴에 찍어바르고,
어제입었던 그바지에 피죤냄새 쩔어있는 회사 티셔츠를 주워입는다.
아침 5시50분.
현관문을 열고 나오지만 쉽사리 닫을수가없다.
혹시라도 아침잠결에 큰애가 뛰어나와
''아빠, 잘갔다와''라고 손을 흔들지도 모르니.
회사까지 50분. 7시전에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오늘 하루도 공장장의 찌푸려진 눈살을 피할수있다.
입사할때는 설계자 였지만, 좆소에는 그런거없다.
각부서간의 허물을없애고 업무간의 오버랩을통해
최상의 근무 협업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여야 하기에
난아침 조회 준비와 야간근무자 업무 결과부터 확인한다.
설계가 이런거도 해요? 라는 의문 따위는
15년전 좆소 생산공장에 입사한 순간부터 개밥에 쳐넣어 버렸다.
차라리 소기업이면 낫았으려나?
기준도 애매한 중견기업. 그 생산공장 안에 15년차 설계과장.
현장에 치여, 공장장에 치여. 지금이라도 나가라는식의 사장의 욕짓거리에.
온몸의 세포가 눈으로 몰려 혈압이180 까지 치솟는다.
점심... 저녁... 그리고 출근한지 13시간만에 힘겹게 회사를 나선다.
저녁8시.
꽉막힌 퇴근길. 퇴근은 출근보다 30분이 더걸린다. 눈꺼풀이 무겁다.
난오늘도 김과장과 이대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향한다.
토끼같은 애새끼들을 트롤에게서 구해야 하기때문이다.
던전입구에 도착했다. 문을열면 토끼 두마리가 나를향해
두팔벌려 체력회복 마법을 시전한다.
하지만 좋아 할때가 아니다. 토끼뒤에는 트롤이 지키고 서있으니.
트롤이 내귓가에 대고 잔소리를 시전한다.
이건 도저히 내성이 안생긴다.
반격기를 쓸수도있지만 토끼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걸 원치 않아 다시한번참는다.
난 그저 트롤이 토끼를 잡아먹지 않았는지 정성스레 이곳저곳을 살필 뿐이다.
밤 10시.
토끼두마리를 스다듬으면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영수와 지영이가 멱살잡고 헤드스핀 돌았던 이야기부터
저녁에 트롤이 닭대가리로만든 냉동패티 구워준 이야기까지
머가그리 우스운지 떠들며 이야기를한다.
''아빠, 나 이제 잘꺼야''를 스무번 이야기하고는
토끼들은 트롤을 피해 꿈나라로 떠난다.
밤 11시.
트롤이 밀린 집안청소와 설거지를 끝내고
티비 앞에 맥주캔을들고 앉아있다.
작년이맘때쯤 트롤과 주먹다짐 하던날도 이런기분이었다.
''넌 좋은 엄마, 좋은 딸, 좋은 며느리지만 좋은아내는 아니라고''
면전에서 디스 퍼부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담배한대를 입에물고 10년전 신혼여행갈때 샀던 나이키 런닝화를
구겨신으며 집을 나선다.
아파트 헬스장으로 내려가면 아주매미들이 헬스장 한구석에 모여
남편들 디스전을 벌이다 내가 들어오니 바퀴벌레처럼 각자집으로 숨어버린다.
런닝30분.
이것마저 안하면 내몸에 근육이 멸종할것 같다.
옆집 대머리 아저씨도 그집 트롤을 피해 헬스장으로 내려왔다.
옆집 트롤은 우리집 보다 레벨이 높아 보였다.
밤 12시.
씻고 나오니 트롤이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때는 이여자면 내 모든걸 포기해도 좋다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냘펐고 긴생머리가 이뻤다.
벌레를 무서워해 강변을 거닐지도 못했다. 착했었다.
능력 있는 은행원 이었고, 일할때 유니폼 입고 있던 모습이 더 섹시 했다.
어린 나이였고, 한번 품어 보고 놓칠 여자가 아니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투명한 피부에 내존슨을 부비부비....
나도 모르게 트롤옆으로 다가간다.
트롤에게 풍겨오는 샴푸냄새. 약간의 맥주냄새. 그리고 암컷냄새.
존슨이 힘을내며 살을 비집고 일어선다.
암컷 트롤이 존슨의 힘겨운 기척과 수컷의 발정을 눈치 챘다.
싫은 기색을 보인다.
트롤은 한마디를 내뱉고 토끼들 곁으로 걸어간다.
''건들면 뒤진다''
나는 오늘도 외롭게 팬티를 내린다.